(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한국 IT 업계에서 일본의 주요 메신저가 라인이라는 건 꽤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플랫폼이 다른 국가에서 이렇게 많은 점유율을 확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었으니까요. 더구나 일본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동남아 지역에서도 상당한 지배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통째로 일본에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뇨. 아무리 자국 기술 우선주의가 판을 친다지만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
판교의 IT 기업에 다니는 한 개발자의 설명이다. ‘라인’을 글로벌 서비스로 키워놓은 네이버가 사업을 일본에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이다.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하던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약 51만9000건의 개인정보가 뺴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와 일부 내부시스템을 공유하던 네이버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악성코드에 감염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자, 일본 총무성이 움직였다.
올해 3월과 4월 두 차례 행정지도를 내렸다. 일본 정부는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해 사이버 보안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며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체계 개선을 요구했다. 사실상 경영권을 일본 측에 매각하라는 압박이었다.
라인도 일본 총무성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라인의 론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라인 CPO(최고제품책임자)를 이사회에서 축출했다. 이어 네이버에는 지분 매각을 강력히 요청했고 그간 네이버에 맡겨온 서비스 위탁관리도 순차적으로 종료하며 기술독립에 나선다고 천명했다.
이런 분위기대로라면 네이버는 조만간 잘 키운 서비스인 라인에서 억울하게 손을 떼야 할 위기에 몰렸다. 라인은 과거 네이버 일본 법인이던 NHN재팬이 개발해 지난 2011년 출시한 메신저 서비스다. 현재는 페이와 웹툰, 쇼핑 등 여러 서비스가 연계된 일본 생활 필수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라인 글로벌 누적 이용자는 10억명에 달하는데 일본에선 월간 이용자 수가 96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될 정도로 위상이 상당하다.
다만 라인이 온전히 네이버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은 이런 경영권 박탈 위기를 키웠다. 네이버는 2019년 소프트뱅크와 ‘경영 통합’을 선언하고 2021년 합작회사인 A홀딩스를 세웠다. A홀딩스는 라인과 야후재팬 등을 서비스하는 상장사 라인야후의 최대주주(64.5%) 역할로 두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이 회사 지분을 50%씩 나눠가졌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와 합작해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의 위협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악수로 남고 말았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50대 50으로 라인야후 지배권을 가졌지만, 이사회는 3대 4로 소프트뱅크가 우세한 구조였다. 네이버는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100% 자회사였던 라인 지분을 50%로 낮추고 소프트뱅크에 지분 50%를 넘긴 셈이다.
실제로 네이버가 라인의 경영권에 손을 떼면 그 파급력은 크다. 당장 네이버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고, 직원들의 고용 문제도 첨예하다. 한국에도 라인 관련 직원들이 2500명가량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선 지분 관계가 정리되면 실직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일부에선 우리나라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일본 정부의 네이버에 대한 압박이 지나친 개입으로 볼 수 있는데도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선 넘은 압박에도 이를 개별 기업의 경영권 방어 문제로 인식하고 제대로 된 외교 전략을 세우지 못한 게 우리 정부의 실책이란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