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이산하 기자)
주택경기 침체와 전세가격 하락에 따른 전세보증금 반환 또는 손실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무자본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 매매)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 전세사기가 심각한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이뤄졌던 투자가 주택경기 침체기를 맞으면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미반환이나 손실로 확대되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출규제를 받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달리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경우 적은 투자금액으로 주택구입이 가능해 경기침체시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세가격 급등으로 무자본 갭투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시에 급락하면서 전세 리스크가 확대됐다. 이에 따라 ▲금융 시스템 및 보증보험 강화 ▲전세거래 안전성 확보 ▲기업형 임대사업자 및 중개기관 활성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KB경영연구소는 최근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과 정책 제언'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 전세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가격은 2022년 하반기 이후 하락세를 나타내 최근 1년 동안 8.8%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수도권이 11.7%나 하락했고, 비수도권에서는 대구광역시가 12.7%의 하락률을 나타냈다.
지난해 '빌라왕' 사태를 계기로 전세사기가 이슈화됐으며 이후 다양한 형태의 전세보증금 관련 리스크가 불거졌다.
보고서는 "전세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역전세로 인한 전세보증금 이슈는 오는 2024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매가격이 전세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전세보증금 손실 이슈가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세보증금 회수가 지연될 경우 임차인은 주택 구입, 근무지 이전, 자녀 교육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KB경영연구소 강민석 부동산연구팀장과 손은경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전세시장의 보증금 규모는 약 900조~100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면서 "보증금 있는 월세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가 주요한 임차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차가구에서 순수 전세가구는 2014년 이후 50%를 밑돌며 보증금 있는 월세보다 낮은 비중이지만 여전히 주요한 임차 형태다. 서울의 경우 임차가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48%가 순수 전세로 거주 중이다.
보고서는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세입자가 동원가능한 자금 규모가 커지면서 전세가격 상승 및 투자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는 등 과도한 지원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8년 이전에는 전세자금 대출이 주택구입을 위한 자금으로 활용됐다. 집값 상승이 지속되면서 일부에선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 갭투자 수요와 맞물려 주택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매매전세비)이 높은 경우 주택경기가 침체되면 잠재적 불안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세시장의 구조적 리스크
전세는 기본적으로 레버리지 투자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주택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과 손실 변화가 크다. 주택 구입때 투자수익률을 살펴보면 매매전세비에 따라 수익률 변화가 크다.
예를 들어 시가 5억원의 주택 구입 시 매매전세비 70% 주택의 경우 1억5797만원이 필요하다. 반면 매매전세비 90% 주택의 경우 3분의 1 수준인 5797만원만 있으면 된다. 주택가격이 10% 상승하면 매매전세비 70% 주택의 경우 26.6%의 수익이 발생하고, 매매전세비 90% 주택의 경우 72.5%의 수익이 나온다.
문제는 집값이 떨어질 경우다.
집값 하락 때 매매전세비가 높을수록 투자자의 손실이 급증한다. 투자금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 커질 경우 집주인은 손실을 전부 책임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사기와 같은 악의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여러 주택에 투자해 동시다발적으로 손실이 발행 경우 대처가 어렵다는 것이다.
◆ 임대차계약 제도상 허점
전세는 주택구입과 동시에 임대차계약이 가능하다. 임대인은 자기자본 없이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임대인에 대한 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축 주택이거나 세입자가 없는 경우 신규 세입자를 모집해 전세계약 당일에 매매거래를 진행, 구입과 전세계약을 동시에 체결함으로써 전세보증금으로 매매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구조다.
임차인은 세금체납 이력, 보유주택 수 등 임대인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계약 후 발생 가능한 잠재적 리스크를 파악하기 어렵다.
또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대항력은 확정일자, 전입신고, 거주 등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효력이 발생한다. 그런데 전입신고의 경우 다음날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해 임대차계약 당일 근저당이 설정되면 세입자는 우선권을 잃게 되는 구조다.
주택 구입의 경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다양한 수단으로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고 있지만 전세의 경우 규제가 없다.
보고서는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는 소액으로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매매가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무자본으로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세사기는 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는 주택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매매전세비가 100%에 육박하는 주택의 경우 임대인은 자기자본이 없어도 전세보증금을 받아 주택을 구입했다.
◆ 전세 리스크 정책 제안
보고서는 우선 금융시스템과 보증보험 강화를 주장했다.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을 DSR 산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만기 때 돌려받는 전세보증금으로 상환이 가능해 DSR 산정에서 제외하고 있지만 건당 대출 규모가 크고 과도한 대출로 인한 주택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해 DSR 산정 포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매매전세비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매매전세비가 70% 이상으로 높을 경우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보증금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정책적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
이와 함께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담대에 대해서는 규제지역 등의 제약 조건 해제가 필요하다는 것.
보고서는 또 전세보증금 규모를 감안할 때 부동산 중개업소의 역할과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임대차 물건 하자 시 중개업소의 공제증서에서 일정 부분 보증금을 부담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 보증금의 경우 계약 건별 공제가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개인이 전세계약 때 임대인의 세금 체납 및 악성 임대인 여부 등을 안심전세앱에서 확인한 후 세입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전세계약 시 중개인이 해당 물건의 매매전세비를 산정해 임차인에게 고지하고 사전에 잠재적 위험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형 임대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임대주택 공급 안정화를 위해 공공임대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형 임대주택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 또 자금력이 있는 금융권이 주택을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거나 향후 주택시장 회복 시 공급할 수 있는 풀로 활용하는 등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B경영연구소 강민석 부동산연구팀장과 손은경 선임연구위원은 "전세시장은 향후에도 지속적인 임차유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전세거래의 투명성 제고와 정책적 보완, 안정적인 시장 참여자 확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