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2년 전에 2억원을 보증금으로 내고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이 끝나가는 요새 집주인이 새 임대인을 구하지 못해서 시간을 좀 달라는 식으로 얘길 하더라고요. 저도 이사를 해야 해서 보증금이 당장 필요한 상황인데 난감합니다. 아무래도 집주인이 갭투자를 한 모양인데, 이대로 전세금을 떼이는 게 아닌가란 걱정도 들고요. 요새 흉흉한 소문이 너무 많이 돌고 있으니까요.”
30대 직장인 싱글남 김남기씨는 강서 지역의 투룸 빌라를 전세로 살다가 최근 이 같은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주인이 후속 임대인을 구하지 못하자 보증금 반환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빌라 전세 임대인은 많다.
집값 하락폭이 가팔라지면서 이른바 '깡통전세'의 위험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깡통전세란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그보다 높아서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전세 계약을 뜻하는 말이다.
최근 한국부동산원이 부동산테크를 통해 공개한 ‘임대차시장 사이렌’ 정보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9월 전세가율은 75.2%로 8월(74.7%)보다 0.5%포인트 높아졌다.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다. 이 비율로 높을수록 ‘깡통전세’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해 집주인이 전세계약 만료 시 주택을 담보로 잡아 돈을 빌려도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지역별로 보면 경북 포항북구(91.7%), 경북 구미시(90.8%), 전북 익산시와 경북 포항남구(각 90.6%), 광양시(90.2%) 등지는 전세가율이 90%를 넘어 전월보다 깡통전세 위험이 더 커졌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8월 69.4%에서 9월에는 70.4%를 기록하며 70%대로 올라섰다.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63.2%로 타지역보다 낮았지만 전월(62%)보다는 1.2%포인트 올라 상대적으로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세 사기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과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0월엔 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세입자 수백명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망에 올랐던 40대 남성이 지병으로 숨졌다. 이 남성은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리며 세입자 수백명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었다. 지난 9월엔 3400여채 빌라를 매입해 전국 최대 규모 전세 사기 행각을 벌여 ‘빌라의 신’으로 불리는 일당이 구속되기도 했다.
사기까진 아니더라도 저금리 기간 자기 자본이 부족한 집주인들의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수)로 사들인 주택이라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 빌라의 경우 위험성이 더 크다. 빌라는 거래가 많지 않아 매매가격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개업소가 주변 빌라 거래 사례와 견주면서 매매가를 제시하면 그대로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증금을 억울하게 돌려받지 못할 때를 위한 제도가 있긴 하다. 바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다. 전세반환보증이란 보증기관이 일단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고, 추후 집주인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전세반환보증을 취급하는 기관으로는 HUG와 주금공, SGI서울보증 등이 있다.
물론 이 보험도 만능은 아니다. 보험료나 보증료를 낸 이후 이를 담보로 전세금을 보호받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보험료처럼 월별로 나눠서 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아울러 각 보증보험마다 보험료와 신청기준 보증금 규모, 가입가능 시기 등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을 잘 따져본 후 가입해야 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침체가 당분간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깡통전세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은 깡통전세보다는 매달 지출이 발생하더라도 보증금 규모가 작은 월세나 반전세를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