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김지영 기자)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세가 이어지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의약품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는 물량이 부족해 처방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뿐 아니라 소염진통제·해열제 등 호흡기 질환에 사용되는 다른 의약품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중 마스크·타이레놀·진단키트 부족 사태가 연이어 터져 나왔음에도 수요 관리 실패로 의약품 품귀현상이 또다시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이가 아픈데 약이 없어 “이런 게 물자부족인가 싶네요”
“아이가 아픈데 처방약이 없다고 해서 시럽약이라도 사려고 했더니 이것도 다 품절이라고 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진모씨(41)는 최근 코로나19에 확진된 6살 아들의 해열제를 사러 동네 약국 8곳을 돌았지만 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들의 유치원 친구 엄마가 “집에 있는 약을 나누어주겠다”고 해서 약을 구할 수 있었다. 아이의 열이 39도를 찍자 남편과 번갈아 가며 근처 약국을 모조리 찾아다녔지만 모두 품절이었다. 다행히 친구가 준 약을 복용한 후 열도 내리고 컨디션도 좋아졌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진씨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물자부족을 겪고 나니 이제는 약국만 보이면 들어가서 감기약과 해열제 를 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사재기처럼 약을 쟁여놔야 안심이 된다”면서 “혹시 아이의 유치원 친구나 지인들도 코로나 확진이 되었을 때 약이 없으면 나눔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 수 있는 약은 미리 사둔다”고 전했다.
처방받은 환자, 재고 없어 여러 약국 돌아다녀도 사기 힘들다
일간 확진자가 20만 명 이상 쏟아져나오면서 약국은 전쟁터가 됐다. 해열제뿐만 아니라 기침약과 가래약 등 모든 코로나19 증상에 대응할 약품이 동났다. 200만 명이 넘는 재택치료자들은 물론, 혹시나 감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미리 약을 구매하려는 사람들까지 약국으로 몰려든 결과다. 제약사들은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지만, 의약품 공장 특성상 생산라인 변경을 할 수 없어 물량을 한껏 늘리진 못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대유행이 정점을 찍고 확진자 수가 줄어야 초유의 의약품 품귀 현상이 걷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부터 일부 약국에서 드문드문 보인 의약품 부족 현상은 이달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품귀 사태가 빚어질 정도로 심화됐다. 동네 병원에서 처방해준 의약품을 약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서울 노원구 거주 박모씨(51)는 “인후통이 너무 심해 목이 찢어지는 고통이 있는데도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이 없어 약국 수십 군데를 돌아다녔다”며 “처방받은 약을 정작 구매할 수 없으니 어떤 약을 먹어야 낫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약국 관계자는 “약이 입고되는 순간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의 처방으로 바로 품절된다”고 말했다.
타이레놀 부족현상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감기약 자체를 구할 수 없어
처방 없이 구매가능한 일반약은 더 구하기 힘들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천모씨(38)는 “오미크론 감염 증상으로 열이 많이 올라 해열제를 사려고 온 가족이 동네 아닌 다른 곳까지 구하러 다녔지만 사지 못했다”며 “기침약, 가래약 등 코로나19 증상과 관련된 모든 의약품을 약국에서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코로나백신을 맞았을 때도 타이레놀 부족 현상으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이번 품귀현상은 그때와는 또 다른 차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초유의 의약품 품귀현상은 확진자 급증과 함께 재택치료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빚어졌다.
21일 0시 기준 재택치료자는 199만3986명으로 최근 5일간 200만명 수준이다. 이달 초만 해도 100만명을 넘지 못했지만 일간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면서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도 있지만, 물량이 적은데다 처방 대상 범위도 한정적이어서 대부분의 재택치료자들은 해열제와 기침약 등으로 버텨야 할 실정이다.
‘나도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환자도 구매경쟁
여기에 ‘나도 언제든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 심리로 의약품을 미리 구매해두려는 수요까지 겹쳤다.
직장인 이모씨(44)는 “주변에 확진자들이 워낙 많아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면서 “오히려 ‘내 차례는 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곧 나도 걸릴 수 있겠구나 싶어 미리 비상약을 사뒀다”며 “동료들을 보니 확진되고 정작 약을 못 구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통을 겪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부 서모(51)씨도 “아이가 셋이다 보니 한 명만 걸려도 순차적으로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불안감이 높다”며 “지난달에 약국을 몇군데 돌며 살 수 있는 약들을 모두 구비해뒀다”고 전했다. 한 약국 관계자는 “이미 지난달부터 코로나19에 확진되지 않거나 증상이 없는 고객들의 의약품 구매도 늘었다”며 “그로 인해 정작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들이 약을 먹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약사, 월간 기준으로 평소 대비 1.5배 생산해도 부족해
제약사들은 생산량 확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시럽형 어린이 해열제를 생산하는 한 제약사 관계자는 “공장은 이미 풀케퍼(최대생산) 체제”라며 “월간 기준으로 평소대비 1.5배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한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부서는 주말 특근은 물론 철야도 하는 상황이다.
정부도 감기약 수급 특별관리에 돌입해 매주마다 각 제약회사로부터 생산-공급량 보고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산 확대에도 한계가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엄격한 품질관리를 받는 의약품 공장은 다른 업종 제조시설과 달리 생산라인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바꾸기 힘들어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대유행이 정점을 찍고 수요가 줄어드는 시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