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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화재와 사퇴는 관계 없다” 해명에도…2030이 쿠팡에 뿔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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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화재와 사퇴는 관계 없다” 해명에도…2030이 쿠팡에 뿔난 이유
  • 최기훈 기자
  • 승인 2021.06.23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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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픽사베이
@픽사베이

17일 오전 11시, 쿠팡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쿠팡 김범석 의장, 글로벌 경영에 전념… 해외 진출 계기”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의장직과 등기이사에서 모두 물러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측은 사퇴 이유로 “뉴욕증시 상장과 해외 진출을 계기로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사진=쿠팡 홈페이지 화면캡쳐]
김범석 쿠팡 의장.[사진=쿠팡 홈페이지 화면캡쳐]

공교롭게도 이 소식은 쿠팡 덕평물류센터 지하 2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아직 살아남았을 때 전해졌다. 같은 날 이른 아침에 번진 불의 진화 작업은 닷새째 이어졌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관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당연히 김 전 의장의 사퇴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쿠팡 관계자는 “김 전 의장의 사임과 사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서 “사임등기가 완료돼 일반에 공개된 시점에 공교롭게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론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온라인상에선 ‘쿠팡 불매·탈퇴’를 외치는 소비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요즘의 싱글족은 가치소비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업의 역할과 도덕성에 대한 눈높이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김 전 의장의 사임도 화재 사고를 비롯해 최근 쿠팡을 둘러싼 각종 악재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이다.

쿠팡 이사회 구성.[사진=쿠팡 제공]
쿠팡 이사회 구성.[사진=쿠팡 제공]

사임의 진짜 이유가 어찌됐든 김 전 의장이 등기이사에 물러나면서 얻는 이익은 상당하다. 일단 각종 소송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등기이사는 주주총회의 보통결의를 거쳐 선임된다. 회사와는 위임관계에 있기 때문에 민법상 각종 위임 규정이 적용된다. 또한 상법상 이사의 권한을 주면서 그에 따른 무거운 의무와 책임도 지운다.

가령 등기이사는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된 행위를 할 경우 회사와 연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기이사가 ‘책임 경영’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제 김 전 의장은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으니, 쿠팡을 둘러싼 각종 민·형사상 이슈에서 벗어난다는 얘기다.

김 전 의장은 올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적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둬 법의 책임 범위가 아직 애매모호하지만, 김 전 의장의 경우 국내에서 맡는 직책이 없다 보니 처벌을 강하게 주장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미국 기업의 CEO로만 남은 김범석 전 의장에게 책임을 지울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공정위로부터 ‘동일인(총수)’ 지정을 받을 경우, 국내 사업장 직함과 관계없이 법적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공정위의 판단 기준이 사회 통념상 사실상의 경영권을 갖고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동일인 지위를 받게 되면 해당 오너 일가는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갖가지 규제를 받게 된다. 법 위반이 발견되면 제재하고 심한 경우엔 검찰에 고발한다.

하지만 김범석 전 의장이 공정위에 불릴 일이 당분간 없다. 공정위는 올해 쿠팡의 동일인을 창업주인 김범석 전 의장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김 전 의장의 국적이 미국이란 점 때문이다. 그간 공정위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사례가 없었다.

책임질 일이 줄었다고 해서 김 전 의장의 의무와 권한까지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애초 등기이사 사퇴가 경영권을 포기하겠단 의미가 아니라서다. 등등기이사를 사임했음에도 그는 의결권을 가장 많이 가진 경영진이자 창업자, 그리고 오너다. 김 전 의장은 한국 쿠팡의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의 지분 10%를 갖고 있고, 차등의결권 부여로 실질 의결권은 80%에 육박한다. 김 전 의장이 가진 클래스B 주식은 주당 29표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석 전 의장은 혁신 기업가로 꼽힌다. 로켓배송을 앞세워 유통업계 혁신을 이끌어왔고,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10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큰 부를 창출했고, 산업의 구조를 바꿨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사업과의 갈등 수위가 높고 사회적 책임이 적지 않았다. 쿠팡의 행보가 국민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민감도와 영향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김범석 전 의장은 기존 재벌기업 창업주들과 다른 평판을 얻으려 애썼다. 스타트업 투자와 자선사업 지원에 적극적인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범석 전 의장의 등기이사 사임 결정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보수와 권한은 많으면서 법적 책임 회피하는 건 재벌 오너들과 다를 게 없는 행태다. 김범석 전 의장은 지난해 연봉 88만6000달러에 스톡옵션 형태 상여금 1325만 달러 등을 더해 총 보수 1434만 달러를 지급받았다. 우리 돈으로 160억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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