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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 스스로 선택해야 불행을 스승으로 삼고 장애를 성공의 디딤돌로 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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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 스스로 선택해야 불행을 스승으로 삼고 장애를 성공의 디딤돌로 여겨라
  • 김백리 자유기고가
  • 승인 2008.01.11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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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없이 사는 것이 많은데, 10대에는 철 없이, 20대에는 겁 없이 살다가, 30~40대에는 정신없이, 50~60대에는 빈틈없이 살고, 70대에는 아무 낙 없이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만큼 죽음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죽음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죽음이라는 것과 견주어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의 활동은 죽음이 오기까지 그 죽음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망 선고를 받고 태어난다. 이것이 진리이다.

‘죽음’ 이라는 불청객은 예고 없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일부 종교인들의 이야기처럼 죽음은 예방 주사가 없다. 자신들의 뜻과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자라고, 그리고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팔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죽어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단순히 자연의 섭리라는 것은 우리는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정확히, What[인식대상]에 대한 것이 아니고, How[사는 방법]에 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이 분야의 전문가들(철학가나 사상가들)은 주로 ‘What’(인생이란 무엇 무엇이다)에 치중했고, 일반인들은 한탄이나 불만과 같은 감정을 표출하는 감탄사로만 사용해 왔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인식의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고, 실천[행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결코 부질없는 질문이 아니며, 전문적인 철학가나 역술인이 아닌 이상, 이 질문은 ‘나는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 또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와 같은 실천적인 측면의 질문인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나에게 맞는, 내가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과 같다. 철학이 없는 삶, 생각이 없고, 고민이 없는 사람이라면 동물들의 생활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나’ 라는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은 바로 ‘인생에 대한(인생을 바라보는) 자세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피동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인생관을 적극적인 인생관으로 바꾸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라는 철학을 갖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는 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적합한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은 바로 나이고, 이것은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중요한 질문에 대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들 자기 시각에서, 자기 관점에서 사물을 비판하기에 급급하다. 한 꺼풀 더 들어가서 함께 고민하고 접근하고 문제를 풀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들 방관자요 국외자일 뿐이다.

시대를 초월해 현대인들의 마음에 가장 절실하고 간절하게 다가오는 경전 중의 하나가 바로 법구경(法句經)이다. 법구경의 두드러진 특색은 시의 형식을 빈 잠언, 지혜의 말씀이라는 점이다.

원시교단 안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널리 유포되고 있던 부처님 말씀인 시구(詩句)들 가운데서 가장 교훈적인 훌륭한 구절만을 뽑아서 엮은 앤솔러지(anthology)이다. 법구경의 원명은 ‘담마 파다(Dhamma Pada)’로 진리의 말씀이란 뜻이다. 진리를 법(法)이라 번역하고 말씀을 구(句)라 번역해 법구경이라 했다.

법구경의 요지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두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출가수행자나 재가신도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일의 근본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 그래서 모든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밝은 지혜를 얻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主)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킨다. 마음이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또한 그러하다. 괴로움은 그를 따라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 자국처럼 생겨난다. 몸은 빈 병과 같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성을 든든히 쌓아 몸에 악마가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법구경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가끔 상식으로는 믿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가도 정말 그럴까 하고 나도 모르게 되묻게 되는 일이 있다.

가령 어렸을 때, 나는 못난 인간이라는 심리적 입장을 마련해 놓으면, 그 후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가 못난 인간임을 확인하려고 한다.

인간은 때로 자신도 잘 모르는 동인(動因)에 이끌려 움직이며 살아간다. 그것도 어떤 때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잘 모른다 뿐이지 그 원인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재물과 명예와 쾌락을 초월해 참된 정신활동을 가질 것을 바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재물과 명예와 쾌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정신이 참되게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늘 방해하고 있다. 재물과 명예와 쾌락을 앞세우고 간다면 우리는 참된 정신활동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정신이란 물체적인 것을 초월한 실재(實在)를 뜻하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마음이 모든 것의 지렛대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물체적인 것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라티우스의 말처럼 그릇이 맑지 않으면 무엇을 넣어도 시어진다.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하라. 마음을 빼앗기면 눈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지 않는가.

마음은 용감하게, 생각은 신중히, 행동은 깨끗하고 조심스럽게 하고, 스스로 자제하여 진실에 따라서 살며,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은 영원히 깨어 있는 사람이다.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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