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성 없는 지도자의 말과 종이는 언제든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윤관 기자)
16세기 후반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욕과 내부 정적 제거용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은 동북아의 역사를 뒤바꾼 대사건이다.
조선은 건국 후 200여년 넘게 큰 전쟁 없이 오랜 평화에 젖어 국방력 강화에 소홀했다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온 국토를 유린당하는 치욕을 당했다. 수많은 백성이 살상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인명피해와 국토의 황폐화 등 전란의 직격탄을 맞았다. 무능한 군주 선조와 권력투쟁의 화신인 사림이 합작해 만든 민족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천하제일의 패권국을 자처해던 명나라도 무능한 이웃 조선 때문에 무리한 전비 부담으로 국력이 약화됐고, 전란이 끝난 후 40여년이 지나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한다. 14세기 후반부터 중원 대륙을 호령했던 한족 왕조의 몰락은 임진왜란이 촉발점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의 로또는 바로 여진족의 몫이었다. 명은 여진족의 발호를 막고자 조선과 협력해 교린과 분열정책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여진족은 왜란으로 명과 조선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적극 활용해 오랜 숙원인 부족 통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여진의 영웅 누루하치는 곧바로 후금을 건국해 중원 대륙을 위협했고, 마침내 후금을 이은 청은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을 굴복시키고 명·청 왕조 교체라는 대역사를 창조했다. 청은 일본이라는 먼 이웃의 정복욕에 뜻밖의 횡재를 한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도 인적 피해는 상당했지만 조선으로부터 막대한 문화재 약탈과 상당수의 포로를 획득했다. 특히 성리학과 도공 기술자 수용은 일본 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과의 단교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 조선은 일본과 대륙을 연결해주는 통로이자 관문이었다. 히데요시라는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에서 촉발된 임진왜란의 결과, 일본은 대륙과 단절된 외딴 섬이 되고 말았다.
도요토미 사후 정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이 처한 고립 상황을 정확히 읽어내고 조선과의 국교 정상화에 나섰다. 조선도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고 선조 대신 전쟁을 지휘했던 광해군이 집권했다.
에도 막부는 대륙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적 고립 탈피를 원했고,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라는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 후방 안전 확보가 필요했다. 에도 막부는 국교 정상화를 위해 조선인 포로 1500여명과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는 진정성을 보였다.
조선과 일본의 새로운 집권층은 서로가 필요했고, 뜻이 맞아 기유약조를 체결했다. 기유약조는 조일 양국의 이해관계 일치가 만든 극적인 합의다. 조일 우호관계의 상징인 조선통신사의 역사는 기유약조에서 시작됐다.
현대판 임진왜란은 김일성 북한 정권에 의해 자행된 6·25 전쟁이다. 남북은 6·25 전쟁의 화해를 위해 대화 중이지만 68년 전 상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2일 후면 문재인 정부의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다. 북은 잦은 핵도발로 자초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남은 북한의 비핵화로 한반도 평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의 결정적인 키를 쥔 미국과 북한은 대치 중이다. 북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합의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성사되는 약속이다. 어느 일방이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미국이 원하는 확실한 조치를 하지 않고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고 대북제재를 고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8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에도막부가 기유약조 성사를 위해 기울였던 포로 송환 등 진정성 있는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 아직도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를 위해 어떤 조치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뢰성 없는 지도자의 말과 종이는 언제든지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역사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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