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1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의 기조연설에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단상에 올랐다.
작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들고 나왔던 그이기에,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또 뭘 들고 나올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온 것은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란색 서류봉투. 그가 서류봉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든 것은 놀랍게도 노트북 PC ‘맥북 에어’였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 PC가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맥북 에어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세련된 디자인이 아닌 그 ‘두께’에 있다. 가장 얇은 끝부분이 4mm에 불과하고 가장 두꺼운 부분도 2cm를 채 넘지 않는 19.4mm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타이틀을 따낼 만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2cm도 채 되지 못하는 두께 안에 구현된 맥북 에어의 사양이다. 현재 당대 최고의 PC용 프로세서로 꼽히는 인텔의 코어2 듀오 CPU에 2GB의 메모리, 80GB의 하드디스크를 갖췄다.
최신의 노트북 PC들에 비해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조금 적은 점을 제외하고는 꽤나 고급형 사양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기술을 사용해서 이렇게 얇은 두께의 노트북 PC가 탄생했을까?
◇ LED 백라이트 사용으로 더욱 얇아진 디스플레이
노트북 및 데스크톱PC의 모니터와 LCD TV에서 사용되는 액정 디스플레이(LCD:Liquid Crystal Display)의 구동 원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전기적 신호를 통해 액정 분자의 방향을 바꾸어 빛이 투과되는 양을 조절해 화면을 표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필요한 색상의 빛만 ‘투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다보니, LCD 패널의 뒤쪽에 백색광을 내주는 발광체, 즉 ‘백라이트 유닛’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간단히 말해 가정용 형광등을 아주 작고 얇게 만든 것이 있는 셈이다.
또 냉음극관의 경우 빛을 발하는 부분이 하나의 띠 구조를 이루는 ‘선광원’이다. 세부적인 방식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선형 광원의 빛을 LCD 디스플레이에 필요한 ‘면광원’으로 바꿔주기 위해서 램프 커버, 도광판, 반사판, 확산시트, 프리즘시트등의 핵심 부품들이 사용된다. 이러한 부품들을 층층히 쌓아올리다보니 그 두께는 자연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백라이트 방식 중에서 각광을 받는 것이 바로 LED 방식 백라이트다. LED의 특징은 냉음극관과 달리 ‘점광원’방식이어서 선광원→면광원으로 바꾸기 위한 기구가 필요 없다.
또 LED 소자의 크기도 매우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냉음극관 방식의 백라이트 유닛보다 훨씬 얇아진 두께의 백라이트 제작이 가능하다. 맥북 에어 역시 이 LED방식의 백라이트를 사용, 기존의 노트북 PC들에 비해 디스플레이의 두께를 훨씬 줄일 수 있었다.
◇ 일체형 메인보드와 과감한 삭제
일반적으로 노트북 PC에 사용되는 부품들은 작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시켜 전체적인 크기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데스크톱에서 사용되는 부품들에 비해 작은 크기로 제작된다. 작은 크기로 제작된다는 차이점만 있을뿐, 데스크톱 PC용 부품들처럼 일정한 규격과 크키 등을 준수하고 있다.
즉 ‘정형화’된 부품을 사용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정형화된 크기의 부품들을 사용하면 면적이나 두께 등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맥북 에어에 사용된 기판의 크기는 노트북 전체의 1/3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메인보드 안에 CPU, 메인 메모리, 그래픽 내장 메인보드 칩셋 등이 모두 들어있다.
즉 최근의 노트북 PC에서 보편화된 CPU 및 메모리용 소켓과 같은 중간 연결 부품들을 사용하지 않고, CPU 및 메모리 모듈을 기판 위에 직접 실장함으로서 공간 확보는 물론 메인보드 전체의 두께를 훨씬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전용 기판으로 만들다 보니 회로 배선 등의 설계도 보다 최적화 시킬 수 있어 보다 작은 면적의 메인보드 제작이 가능했다. 특히 CPU의 경우 인텔과의 직접 협력을 통해 기존 노트북 PC에 사용되는 동일 모델에 비해 그 차지 면적을 60%로 줄인 전용의 CPU를 사용하고 있다.
구성 요소를 과감히 제거한 것도 눈에 띈다. 맥북 에어는 1개의 USB포트와 헤드폰 단자, 마이크로 DVI 포트 외의 확장 포트나 장치들은 모두 배제했다. ODD도, 익스프레스 확장 슬롯도 없다. 3개의 단자가 외부 연결 단자의 전부다. 전원 입력단자 역시 얇은 슬롯형으로 만들어 두께를 최대한 줄였다.
꼭 필요한 하드디스크의 경우 용량은 작지만 크기와 두께가 작은 1.8인치 제품을 사용했다. 전원 포함 총 4개의 외부 단자들도 그 크기와 구조를 최소화시켰다.
◇ 과감한 다이어트의 성공, 하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맥북 에어를 살펴보면 마치 ‘극한의 다이어트를 성공한 사람’이 떠오른다. 군살이란 군살은 싹 빼버리고 일상 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근육만 남아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다이어트가 오히려 해가 되는 것처럼, 맥북 에어도 얇고 가볍게 만든 만큼의 기능 및 성능이 희생된 제품이다.
물론 데스크톱을 대체할만한 풀 사양 노트북이 아닌, 서브형 노트북 PC이기 때문에 그다지 고사양이나 부가 장치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맥북 에어의 사양은 문제될 것은 없다. 하드디스크이 용량은 확실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 맥북 에어보다 더 얇고, 더 가벼운 노트북 PC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북 에어만큼의 충격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남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을 통해 새로운 장을 개척한 아이디어와 기술, 파격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