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민소진 기자)
지난 25일 사망한 농민 백남기씨 부검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애초에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서울대병원은 어떤 공식입장도 내놓지 않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씨 사망진단서에는 선행사인으로 급성 경막하출혈, 중간선행사인으로 급성신부전증, 직접사인으로 심폐기능정지라고 돼 있다. 병원은 직접사인을 기반으로 사망 종류를 '병사'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는 대한의사협회(의협) 규정을 위반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의협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대개 원사인에 따라 결정된다.
백씨의 경우 직접사인이 심폐기능정지이더라도 사망에 이르게 된 궁극적 원인으로서 선행사인 '급성 경막하출혈'에 따라 '외인사'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성 경막하출혈은 외부 충격으로 인해 두개골과 뇌 사이의 '경막'이라는 얇은 막 아래에 피가 고인 상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이보라 전문의는 지난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외상으로 병원에 실려 와 응급조치해 생명을 연장했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면 외인사로 본다. 병사로 구분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망진단서상 병사 판정을 토대로 부검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치의가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정지사를 사인으로 보고 병사로 판단했다"며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부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외인사'가 아닌 '병사' 판정을 내려 부검 주장의 빌미를 제공한 배경을 놓고 서울대병원 관계자들이 외부 압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백씨 딸 백도라지씨는 30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 전공의 레지던트가 유족과 얘기하는 도중 (병원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는 걸 봤다고 한다"며 "이후 사인을 본인이 결정해서 쓰는 게 아니라 부원장과 신경외과 과장과 합의해 써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백씨는 이어 "이후 유족을 돕는 의사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병원 측은 '실수는 맞지만 고치진 않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유족 측은 서울대병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 출신이라는 점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2014년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청와대 주치의를 역임한 바 있다.
임기 3년인 서울대병원장은 이사회가 후보 2명을 선정해 명단을 교육부로 보내면 교육부 장관이 1명을 제청해 청와대가 지명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병원장 인사를 둘러싸고 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 4월 서 교수가 서울대병원 본원 교수가 아니었고 대통령 주치의를 했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사실상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도 했다.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레지던트에게 (전화했을) 당시 진단서 내용을 지시한 게 아니라 행정적 절차에 관해 얘기한 것"이라며 "병사냐 외인사냐 여부를 협의한 건 아니다"라고 비공식 해명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주치의인 신경외과 과장 백선하 교수는 병사가 맞다고 했다. 진단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면서 "국회에서 증언할 때까지 성명서나 기자회견 등을 통한 공식입장은 밝히지 않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은 백씨가 공식 사망 판정을 받은 다음 날인 지난 26일 오후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영장을 재신청 했고 법원은 지난 28일 오후 백씨 시신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검증 영장을 발부했다. 유족과 혐의를 거친다는 내용의 조건부였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 29일 오후 부검 협의를 위한 대표 선정 및 협의 일시·장소를 다음달 4일까지 경찰에 통보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등기우편으로 백남기 투쟁본부 측에 발송했다.
유족 측은 "고인을 죽게 한 경찰의 손이 시신에 닿지 못하게 하겠다"며 강경하게 부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