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께 보상하겠다”던 삼성… 말뿐이었나
점심시간 외출금지 이어 ‘건강 볼모 근무’까지
안전보다 영업비밀이 우선…?
(시사캐스트, SISACAST=정민지 기자)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산업단지 협력업체 직원이 ‘점심시간 외출 통제’를 받은 가운데(<시사캐스트> 단독보도), 안전사고나 직업병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사인까지 하고 있다고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금연을 강요하면서까지 직원의 건강을 우선시한다는 이미지와는 달리 위험한 노동 환경의 노출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제보가 전달돼 해당 내용을 <시사캐스트>가 이달초 단독 취재했다.
탕정 산업단지에서 근무했던 A씨는 "백혈병 사건 이후 협력업체 직원들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안전사고와 직업병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 묻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들 일일이 사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근할 때 20여 분이 더 걸린다”며 “마치 수술 전 동의서 사인을 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사인을 하지 않으면 출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야 한다"며 삼성의 부조리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문제는 백혈병에 걸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원이 사망해 산재로 인정받은 이후 시점이라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은 백혈병이나 뇌종양 등의 직업병에 노출돼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만약 협력사 직원이 근로 환경 때문에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발생해도 직업병 인정이 어려워진다. 어쩔 수 없이 건강을 볼모로 일을 해야 하는 것.
A씨는 “아무래도 협력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단기 노동자가 많아 이동이 잦기 때문에 (회사의 방침에)반발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백혈병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 직업병의 피해보상 협상과 관련된 조정위원회를 통해 마련된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근로자를 보상하겠다는 대외적 입장과는 매우 다른 주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공식 블로그 ‘삼성투모로우’를 통해 "종합진단을 실시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으며, 특히 보상에 대해서는 원칙과 기준을 세운 뒤 협상 참여자뿐 아니라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분을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강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측은 ‘협력업체 직원 동의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8일 <시사캐스트>와의 통화에서 “그런 동의서가 있다는 것은 들은 바 없다”고 일축, 해당 동의서에 대해 부인했다.
이와 관련,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관계자는 <시사캐스트>와의 통화에서 "만약 협력사 직원 동의서 사인이 사실이라면 이는 산업재해에 대해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삼성은 아직 보상범위를 정확히 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업무환경에 대한 자료를 삼성이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증빙이 어렵다”며 “협력업체 직원이 이러한 동의서에 사인시 보상은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서의 직업병 인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명 '삼성공화국'은 영업상 비밀이라는 핑계로 작업장에 대한 정보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반도체 직업병 예방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통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것과 관련,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작업장에 대한 알권리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와의 교섭에서 각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모든 화학물질의 이름과 사용량, 방사선 발생장치 및 노출평가 등의 현황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은 '영업상 비밀'이라는 입장만 고집하고 있는 것.
공유 전문의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6월, 최근 3년간 재해발생현황과 보호구지급 및 착용상태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의 답변에 따르면 "(삼성이) 기업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므로 당사자의 의견을 들어 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가리고 제출(한다)"고 전해졌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와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 등을 봐도 (사업자 등은)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정보는 공개할 의무가 있다.
한편,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지난 3월 50대 협력업체 직원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경찰과 삼성전자는 변전실 밖 기계실에서 근무하던 협력업체 직원 김모(52) 씨가 문틈 등으로 새어나온 가스에 질식해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파악했다. 하지만 기계실 면적이 비교적 넓어 김 씨가 치사량에 이르는 이산화탄소에 노출됐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문점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