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한나라 홍정욱후보에 근소한 차이로 패배
심상정, 한나라당 거물 손범규와 치열한 접전 벌여
울산 동구 노옥희후보도 놀라운 선전 잠재력 과시
장석준·백순환·신언직씨등 무궁한 가능성 보여
진보신당은 지난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심상정, 노회찬 공동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공동대표단 회의를 열고 18대 총선을 뒤돌아보고 새 결의를 다지는 자리를 가졌다.
총선 결과는 외형적으로는 참패다. 지역구에서 당의 집중적 지원을 받았던 심상정, 노회찬 공동대표마저 낙선했고 정당 득표율도 2.94%로 0.06%가 부족해 비례대표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당선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음에도 당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침체돼 있지는 않다. 오히려 창당 직후에 참여한 총선에서 ‘이 정도면 선전했다’고 자평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진보신당 지역구 출마자의 평균 득표율은 9.23%다. 산술적으로만 봐서는 초라한 성적이지만, 7.89%였던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 지역구후보 평균득표율보다 높다.
노회찬 후보는 비록 43.1%를 득표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패했지만, 40.1%를 득표했다. 수도권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린 진보정당 후보는 노 후보가 처음이다.
노 후보의 경우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홍 후보를 앞섰지만 실전에서 분패해 아쉬움이 더 컸다. 노 후보 측에서는 20~30대가 투표권을 대거 행사하지 않은 것이 주요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무산으로 위기를 겪은 심상정 후보의 경우에도 37.7%를 득표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심 후보 역시 선거 초반 여론 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손범규 후보에게 큰 차로 뒤졌지만 맹렬히 추격해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심상정, 노회찬 후보처럼, ‘스타 후보’는 아니었지만, 서울 강북을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전 대변인 출신 박용진 후보는 10% 이상 득표하며 4년 후를 기약했다.. 박 후보는 거대 정당인 통합민주당 최규식 후보(43.5%)와 한나라당 이수희 후보(37.8%)와 맞서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라 의미가 있다.
또 울산 동구에 출마한 노옥희 후보의 선전도 눈에 띈다. 울산 동구 지역은 현대중공업이 위치해 있고 정몽준 의원이 5선을 할 만큼, 정 의원의 텃밭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거 전부터 정몽준 의원의 사무국장 출신인 안효대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노옥희 후보는 32.3%를 득표하며, 그동안 친 재벌 정서가 강했던 지역에 친 노동자 바람을 일으켰다. 노 후보의 득표율은 같은 울산 지역에 출마한 민노당 이영희 울산 북구 후보(31.8%), 김진석 남구을 후보(26.7%)보다 높은 것이어서 진보신당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번 총선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실장은 “비록 9%가 넘는 지역구 평균득표율을 받았지만, 일부 지역의 높은 득표율에 기인한 것”이라며 “이번 총선에서도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10%를 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실장은 “진보정당 운동의 질적인 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며 “국민들이 진보정당에 바라는 정확한 메세지를 듣기 위해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보신당의 선전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동시에 출마한 지역구 성적을 분석해 봐도 알 수 있다. 진보신당 김봉래 후보(2.4%)가 민노당 염후철 후보(3.4%)에게 패한 강원 강릉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진보신당 후보가 민노당 후보를 득표율에서 눌렀다.
한나라당 윤영 후보(38.6%)가 당선된 경남 거제의 경우, 진보신당 백순환 후보(15.6%)가 민노당 김경진 후보(7.3%)를 큰 차이로 눌렀다.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22.9%로, ‘겹치기 출마’ 지역 중 진보양당 후보 득표율의 합이 가장 크다. 즉 1위 후보를 바짝 뒤쫓을 수 있는 수치다.
또 한나라당 공성진 후보(62.7%)가 당선된 서울 강남을 지역의 경우,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5.2%)가 민노당 김재연 후보(4.9%)를 근소한 차이로 눌렀다. 두 후보의 득표율은 합치면 10.1%로 3위인 자유선진당 신대철 후보(7.4%)를 누르고 강남 지역에서 진보정치의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의미있는 수치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신언직 후보는 “아쉬움은 있지만, 강남지역에서 5%를 받고 진보양당 후보의 득표율이 높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노당 권영길 후보의 이 지역 득표율도 1.3% 밖에 안 된 것을 감안하면 신 후보가 비록 10%에 많이 못 미치는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상당한 선전을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신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대운하 반대, 등록금 인하 같이 보수정당들과 전혀 다른 프레임의 정책들을 내놓았다”며 “강남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조금씩 진보정치를 향해 다가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소득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밖에도 서울 관악갑은 진보신당 김웅 후보가 4.0%, 민노당 박명희 후보가 2.6%를 득표했고, 관악을의 경우에도 진보신당 신장식 후보가 7.9%, 민노당 엄윤석 후보가 2.4%를 기록했다. 또 서울 동작을은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가 2.0%를 득표하며, 민노당 김지희 후보(1.2%)를 근소한 차이로 눌렀다.
심 대표는 공동대표단 회의에서 “낮은 인지도와 짧은 기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의석은 못냈지만, 지역구 출마자들 중 다수가 득표율 10%를 넘기는 등 선전했다”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어 그는 “수도권에서는 분패했지만, 진보진영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라고 자평하며 당의 결집을 강조했다.
노 대표도 “의석을 얻지 못하면 제2창당 동력에 타격이 있겠지만, 의석 수와는 별개로 총선 이후 고난의 길은 이미 예상돼 있었다”고 말했다. 평등·생태·평화·연대 등 민주노동당과 차별성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21세기형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애초 계획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진보신당은 당원과 후원금이 급증하는 등 `진보신당 살리기’ 움직임으로 인해 힘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진보신당에 따르면 18대 총선 투표일 다음날인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1천200명이 당원으로 가입했다. 지난달 16일 창당 이후 총 당원 수는 1만3천여 명이다. 이들 당원 대부분은 매달 1만원의 당비를 내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여타 정당에 비해 충성도와 순도가 높다.
당원 가입이나 적극적인 활동에 부담을 느끼는 30,40대 직장인들 위주로 후원금을 내겠다는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진보신당 측은 “학창시절 사회과학에 관심을 보였다가 취직 후 정치에 무관심해진 30,40대들이 총선 결과를 접한 뒤 보수화 대세론에 위기감을 느끼고 진보세력의 생존을 위해 결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보신당이 이번 총선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진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노, 심 공동대표가 지역구에서 선전하면서 진보신당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40대 젊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향후 당을 어떻게 정비해갈지, 민노당과의 관계를 어떤 형태로 정립해 갈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