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캐스트, SISACAST= 윤태현 기자)
1970년 제7대 대통령 후보 경선 신민당 전당대회는 YS와 DJ, 그리고 이철승 세 후보의 40대 기수론으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던 정치 이벤트였다.
당시 유진산 총재는 김영삼의 40대 기수론을 ‘구상유취’라고 평가절하하며 대통령 후보 경선 참여가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치권의 전망과 달리 유 총재는 경선 포기라는 대결단을 내렸다. 유진산 총재는 당시의 심경을 자신의 자서전「해뜨는 지평선」에 자세히 털어놓았다.
“나는 당시 당수의 위치에서 그대로 지명결정에 나서면 지명될 공산도 컸었다. 그러나 당인으로서 내 나름대로 민주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할 입장이라는 점과 이 제1야당의 당수된 자가 당내 정치도의가 파괴적으로 동요되는 상황속에서 대통령후보를 경쟁한다는 것은 나의 헌정관,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 총재는 제1야당의 당수로서 대통령후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자신보다는 민주주의를 우선 선택해 대통령 후보 경선 포기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의 진심은 다음에 이어진다. “나는 우리 야당의 존립, 야당의 시대적 사명을 생각해 볼 때 대통령후보 문제만을 가지고 지나친 아집과 독선의식으로서 경쟁을 벌렸다고 할 때 예상되는 당내의 상황, 또는 노소 상투(相鬪)하는 신민당의 인상을 국민 앞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 정권교체에 있다는 사실 등을 그야말로 냉철히 고려할 때 당수인 나는 정치이성을 견지해야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유진산 총재의 결단으로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신민당 전당대회는 YS, DJ, 이철승 세 후보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대흥행에 성공했다. 2차 결선 투표까지 가는 숨막히는 승부 속에 YS가 승리한 1차 투표 결과와 달리 DJ의 승리로 끝났고, YS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복을 남기며 아름답게 마무리된 명승부였다.
전당대회 후, YS와 DJ는 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20여년이 지나 두 사람은 연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정치권의 혼란은 정치 지도자의 탐욕과 집착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혼란기가 되면 멀리 내다보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보이는 것이다. 이런 소이기주의에 빠져 역사 속에 사라진 정치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요즘 야권의 잠룡들은 마치 대권을 잡은 것처럼 각종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유진산 총재처럼 원칙에 의해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세간에 이런 말이 있다. “진짜 배우자는 몇십년을 사귄 사람이 아니라, 결혼식장 당일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대권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자기가 되고 싶다고 오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