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기업TALK] '메가 캐리어' 출범 앞둔 대한항공, 여객·화물·항공우주 '초격차 경쟁력' 제고
(시사캐스트, SISACAST=이현주 기자)
공항은 늘 여행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하다. 가까운 아시아 여행지부터 미국, 유럽 등 장거리 여행지까지, 시간과 돈만 있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요즘에는 해외여행이 일상화되고 있지만, 1989년 이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은 엄격히 제한됐다. 심사와 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고, 관광 목적으로 해외를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1989년을 기점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해외로 가는 문이 활짝 열리고, 여행의 자유가 실현된 것이다.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면서 해외출국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1989년 이전 연간 1만 명에 불과했던 해외출국자 수는 1990년 100만 명을 돌파하더니 2005년에 1천만 명, 2016년에 2천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잠재된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행이 특권이 아닌 일상이 되면서 국민의 삶은 크게 변화했다.
달라진 것은 국민의 일상만이 아니었다. 항공업계도 전성기를 맞았다.
시초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1969년 출범한 대한항공이 약 20년 간 독점체제를 이어오던 가운데 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제2민항사로 금호그룹이 선정되며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했다. 서울올림픽을 거치고,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현되면서 두 항공사는 국내 항공업계의 양대산맥을 이루며 성장기류에 올라타게 된다.
1992년 故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이 대한항공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한항공은 비약적인 성장의 첫발을 내딛었다. 1980년대까지 여객, 화물 노선을 확대해 나간 대한항공은 1990년대 모스크바, 베이징 노선을 잇따라 개설하며 하늘길을 넓혔다. 또 항공기를 지속적으로 구입하며 1990년대 중반에는 항공기 100여 대를 보유한 항공사로 이름을 알렸다.
대한항공의 날개는 ▲화물운송 사업과 ▲여객운송 사업이다.
난기류를 피해 간 화물운송 사업
대한항공 화물운송 사업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초부터 화물 전용기를 적극 도입하며 화물운송 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1년 세계 최초로 북극 항로를 통해 B707 화물기를 태평양 노선에 투입하고, 1974년에는 같은 노선에서 B747 점보 화물기 운항을 시작했다. LA, 파리, 뉴욕, 프랑크푸르트 등에 화물기를 먼저 취항해 항공화물 운송을 위한 노선망을 확장해 갔으며, LA를 시작으로 도쿄, 오사카, 뉴욕 등 해외 주요 도시에 화물전용터미널을 개장하는 등 물류거점 시설을 확충하며 사업 규모를 넓혀갔다.
특히 1990년대 B747-400F 화물기 위주로 보유 기종을 재편하고, 2003년 아시아 항공사 최초로 최대 수송능력을 자랑하는 B747-400ERF 화물기를 도입하면서 화물수송 분야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했다.
사업 초기 가발, 스웨터 등 의류에 국한됐던 수송 품목은 점차 다양해졌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전자제품과 모피류 ▲1980년대에는 컴퓨터와 반도체·자동차 부품 ▲1990년에는 고가 의류, 반도체 ▲2000년대에는 휴대폰, 반도체 LCD 등 첨단제품이 주를 이뤘다.
대한항공이 폭풍우 속에서도 휘청이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날개가 화물운송 사업이었다.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여객수요 97%가 급감하며 항공업계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대한항공도 예외는 아니었을 터. 2020년 1분기에는 566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여객운송 사업이 정체된 상황에서 한쪽 날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대한항공은 다른 쪽 날개로 비행을 이어갔다.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해 화물 공급을 확대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화물운송 사업으로 위기 탈출구를 마련하고, 전세계 주요 항공사 중 유일하게 먹구름을 걷어냈다. 대한항공은 2020년 2분기 1485억 원, 3분기 76억 원, 4분기 1388억 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반전드라마를 만들었다.
화물운송 사업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국적사 11곳이 국제선에서 운송한 화물량은 209만139톤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이 중 대한항공의 국제화물 운송량이 119만6000톤으로, 전체 국제화물량의 57.3%를 차지했다.
지난해 발발한 홍해 사태로 해상 운임이 상승하면서 하늘길을 찾는 화물이 늘고 있고, 해상운임 상승에 따른 풍선 효과로 항공 화물 운임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또 중국발 전자상거래 물량이 급증한 것도 화물량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물운송 사업이 성수기를 맞으며 견조한 실적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회복된 여객 수요에 날개 편 여객운송 사업
화물운송으로 안정된 비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여객 수요도 점차 회복되면서 대한항공은 제대로 된 날갯짓을 시작했다.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0% 상승한 3조8225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여객운송 사업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노선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고, 동남아, 일본 등 관광 수요가 몰린 노선 공급을 확대하며 수익성을 높였다. 이어 2분기에는 매출 4조230억 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여객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특히 미국, 유럽 등 장거리 노선 관광 수요가 증가한 것이 주효했다.
대한항공은 수익 극대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수익성이 있는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겨울철 동남아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나트랑, 푸꾸옥, 발리 노선의 운항 횟수를 늘린다고 밝혔다. 동남아 노선은 비용 대비 수익성이 높아 항공사간 경쟁이 치열하다. 대한항공은 중·단거리 노선에서도 저비용항공사(LCC)와 비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고객들이 LCC사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하지만 수요 급증으로 LCC사의 비행기 티켓 가격이 상승하면서 대형 항공사를 택하는 고객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기회 삼아 대한항공은 중·단거리 노선을 증편하고, 중·단거리 노선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항공기도 확보해 가고 있다.
동시에 장거리 노선 확대를 위한 준비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에어버스사의 중대형 항공기인 A350 계열 기종 33대(A350-1000 27대·A350-900 6대)를 도입한 데 이어, 30조 원을 투입해 보잉사의 중대형 항공기 50대(B777-9 20대·B787-10 30대)를 구입했다. 모두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기종으로, 연료 효율이 높아 많은 승객들을 태울 수 있다. 신기종 도입은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수익성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속 가능 항로 개척하는 항공우주 사업
한편 대한항공은 화물, 여객 사업을 동력 삼아 신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한항공은 미래먹거리로 항공우주를 점찍었다. 대한항공은 여객, 화물 사업 외에 항공우주사업본부를 별도로 운영하며 국내 방위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군용기 MRO(유지·보수·운영) 영역을 확장한 가운데 지난 5월에는 공군의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00 '시그너스'에 대한 첫 창정비(MRO)를 완료하고 초도기 출고식을 가졌다. 창정비는 기존 도입된 군사장비를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완전히 분해해 점검하고 수리 과정을 거쳐 최초 출고됐을 때와 같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고난도 정비 분야다. 대한항공은 1978년 미군 전투기 창정비 사업을 시작한 이래 한·미 군용기 5000대 이상을 창정비하고 성능개량 작업을 수행해 왔다. 향후 대한항공은 창정비 능력과 전문화된 군수 지원 역량을 바탕으로 군용기 MRO 사업 및 성능 개량 사업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무인기 개발사업을 통해 미래 핵심 기술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2000년대부터 무인기 시장을 주목했다. 무인기 시장의 잠재성을 예측하고 시장 진입을 위해 사단 정찰용 무인기(KUS-FT) 체계 개발에 착수했다. 2016년 전투용 적합판정을 받고, 국내 최초 무인항공기 감항 인증을 획득했으며, 2020년에는 초도 양산과 군 전략화를 마치고 부품 국산화율 95%를 달성했다.
2021년에는 수직 이착륙 무인기(KUS-VS) 개발을 위해 보잉사와 기술 협약을 맺었다. 현재 사단 정찰용 무인기를 업그레이드한 '리프트 앤 크루즈'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 중이다. 리프트 앤 크루즈 방식은 이륙용 로터(회전 날개)와 비행용 로터를 각각 장착해 수직이착륙과 고속 비행이 모두 가능하도록 한 방식으로, 개발을 완료한 후 차기 사단급 무인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군에 제안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대한항공은 2022년 대북 정보 수집과 정찰임무 등을 수행하는 중고도 무인 정찰기(MUAV)를 개발해 올해 초부터 양산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하는 저피탐(스텔스) 무인편대기 개발 과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수송용 드론 디자인 특허 등록을 마쳤다. 해당 드론 디자인은 도심 항공 교통(UAM)이나 미래 항공 교통(AAM)을 위한 외형을 갖추고 있어 사물 이동이나 인원 탑승이 가능한 운송 수단으로 보여진다.
대한항공의 무인기 라인업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무인기와 군용기 MRO 기술로 국내 방위산업 발전을 이끌며 방산기업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는 모습이다.
대한항공은 여객운송, 화물운송 사업으로 안정적인 비행을 이어가는 한편, 항공우주 사업으로 지속 가능한 항로를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9부 능선을 넘으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통합 대한항공'이 출범하면 대한항공은 세계 7위권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 떠오르게 된다. 메카 캐리어로의 도약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합병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대한항공이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고, 지속 가능한 항로에서 고공비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