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경기도 학교도서관, 한강 소설 등 노벨문학상 도서 3권 '유해도서' 폐기 논란
경기도교육청, 성교육 도서 관리 지침 도내 학교도서관 3,300여권 ‘열람 제한’
(시사캐스트, SISACAST= 김은서 기자)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강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가 지난해 경기도 초중고 학교도서관에서 폐기하라고 권고했다는 보도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기도교육청에 「채식주의자」 관련하여 민원 제기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한강 작가의 팬이라 밝힌 작성자 A씨는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2528권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라며 폐기한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올렸다.
이어 A씨는 “경기도교육청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극찬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 도서관에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해달라”고 촉구했다.
경기도교육청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경기도 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처리 결과 도서 목록’에 따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이상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구의 증명’,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까지 더하면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은 3종이다.
이외에 ‘아동도서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도 경기도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도서로 분류됐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평화 그림책 ‘꽃 할머니’도 어린이 청소년 책도 열람 제한 도서 목록에 포함됐다.
이로써 경기도교육청의 조치로 학교 도서관에서 금지된 도서는 폐기 2528권, 열람 제한 3340권 등 총 5868권에 이른다.
논란이 일자 경기도교육청은 “특정 도서를 유해도서로 지정하고 폐기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고 반박에 나섰다. 각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학부모 등이 참여한 가운데 ‘유해 도서’로 판단해 폐기했고, ‘채식주의자’는 한 개 학교에서 폐기했다는 게 경기도교육청의 입장이다.
오늘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경기도 교육청 국정 감사에서도 이번 성교육 도서 폐기 사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정을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기도 공문에 따라 학교의 94%가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을 도서 관리 규정에 포함시켰다”라며 “심의 기관이 아닌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임의적으로 책을 심의하도록 한 것은 도서 검열”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유해성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지난해 9월 보수 학부모 단체가 “학교 도서관에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며 연 기자회견을 다룬 기사 등을 참고하라며 도내 학교도서관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학교 담당자들에 따르면 공문에 성교육 도서 처리 현황을 보고하라며 ‘제적 및 폐기’ 도서를 입력할 엑셀 파일이 내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 “고등학교 졸업하고 읽으라 권할 것”
한편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2500여 건의 성교육 도서가 검열·폐기됐고, 경기도교육청의 지시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폐기하게 됐다”면서 “성희롱과 성폭력 사례가 늘고 있어 그런 조치(폐기처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해당 조치가 적절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임 교육감은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임 교육감은 교육청이 도내 도서관들에 보낸 공문에 보수성향 학부모단체의 기자회견 기사가 첨부된 데 대해 "잘못됐다"면서도 "성교육 도서 폐기를 압박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해 "깊은 사고가 들어 있고 표현 하나하나가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채식주의자」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는 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며 "우리 아이들이라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읽으라 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