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의사들은 왜 메스 대신 피켓을 들었나?

2020-09-06     최기훈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최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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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9층 회의실에서 다음과 같은 합의문이 작성됐다.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8월 21일부터 보름간 이어진 의료계 파업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의사들의 현장 복귀까지는 시간이 걸릴 공산이 크다.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특히 전공의협의회가 “우리는 동의한 적이 없다”며 파업을 이어나갈 조짐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중인 엄중한 시기에 왜 이런 의료 갈등이 벌어지게 된 걸까. 발단은 정부가 주도하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등이다. 이중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이 의사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2년부터 10년 간 매년 400명씩 총 4000명을 추가 양성하고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 전형’으로 선발, 10년 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시키겠다고 밝혔다. 다른 50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특수 분야 인력으로, 나머지 500명은 제약 바이오 분야 연구 인력으로 충원한다는 게 계획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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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사 수를 늘리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3명(한의사 0.4명 포함·2017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4명에 못 미치고 있다. 서울(3.1명)과 일부 지역(1.4~1.5명) 간에 의사 수가 크게 차이날 정도로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진료 과목별로도 의사가 태부족한 분야가 많다.

언뜻 정부의 정책은 합리적이고, 의사 수를 늘리지 않으려는 의사단체는 밥그릇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사 측 입장은 다르다. 의사 수는 인구감소율, 국토 면적을 고려한 의사 밀도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과·성형외과 등 쏠림을 막을 의료수가 개편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의사 배출을 늘린다고 지역 의료격차가 줄 것이란 생각도 너무 막연한 일이다.

정부 계획대로 지방 의사를 길러내도, 10년 의무 근무 뒤엔 아무런 대비책이 없어서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이유 역시 공공의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낮은 처우로 인재들이 공공 부문에 종사하기 꺼리기 때문이라는 게 의사들의 반박이다.무엇보다 이런 정책이 일방통행식으로 발표됐다는 점은 문제다.

갈등이 불거진 이후에도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됐다. 8월 24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의협이 잠정 합의에 도달했지만, 전공의들이 반발하며 합의가 불발되자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 등 강경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수도권 수련병원 95곳에 속한 전공의·전임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응급실과 중환자실 인력 358명에게 ‘업무복귀’ 개별 명령서를 발부했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 면허정지나 면허취소와 같은 행정처분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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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강경대응에 의사협회 역시 맞불을 놨다. “정부가 무리한 행정처분을 하면 무기한 총파업으로 저항하겠다”고 대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을 지켜 감사하다”며 간호사들을 위로하는 글을 올리면서 ‘편가르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와 의협의 합의문 작성으로 극단의 상황은 막았지만 의사 파업 이슈는 국민들에게 상처만 남겼다. 특히 응급환자가 사망하고 수술이 연기되는 등 의료 공백의 부작용이 뚜렷했다.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일부는 헛걸음을 하는 등 불편을 겪기도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의료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찾아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