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토크] 82년생 김지영과 ‘82년생 김지영’을 논하다... “사회적 인식 변화할 때”

2019-10-29     이현이 기자

(시사캐스트, SISACAST= 이현이 기자)

최근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리며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경력단절녀 김지영(정유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부터 젠더 이슈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일부 남성들은 해당 작품이 여성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비판했으며, 일부 누리꾼들은 평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기자는 현실 속 82년생 김지영들과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자, 각자 영화를 관람하고 한자리에 모였다. 기자가 만난 82년생 김지영은 실제로 1982년생의 김지영이라는 본명을 가진 두 명의 여성이다.

잡지사 사진기자로 재직중인 미혼 지영씨와 현업 주부 지영씨. 이들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얘기를 나눠봤다.

기자: 영화는 어떻게 보셨나요?

미혼 지영: 너무 재밌게 봤어요. 김지영을 연기한 정유미 배우가 굉장히 현실감 있게 연기를 했고, 그로 인해 런닝타임 내내 영화에 빠져 볼 수 있었어요.

주부 지영: 저는 영화를 다 본 지금까지도 굉장히 마음이 먹먹해요. 제 얘기를 그린 영화같은 느낌이랄까요. 남편과 저도 CC(Company Couple)였고, 결혼하며 회사를 그만둔 케이스거든요. 영화 중반부부터 내내 눈물이 쏟아져 정말 꺼이꺼이 울었던 것 같아요.

기자: 저도 극중 지영이 참 안쓰럽고 사회에 대한 편견을 사실적으로 다뤄져 많이 슬프더라고요.

주부 지영: 모든 주부들은 이해할거에요. 아이를 돌볼 때는 혼자서 화장실도 못가거든요.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아기는 내내 안아달라고 우는 통에, 아기를 안고 볼일을 본적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그렇게 기본적인 욕구도 제대로 충족할 수 없는 상황들을 보여줘서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투영되면서 너무 슬프기도 했어요.

미혼 지영: 아이 안고 화장실을 간다는게 상상이 안되요. 아기는 그냥 마냥 예쁘고 인형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를 보고 현실을 깨닫는데 도움이 됐어요.

주부 지영: 화장실 뿐 아니라 나를 위한 무엇이든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언젠가는 컵라면에 불을 부어놓은 그 사이에 잠을 자던 아기가 깨서 다시 얼러 재우고 난 뒤, 퉁퉁 불은 컵라면을 앉아서 먹지도 못하고 서서 먹은 경험이 있는데 그때의 심정은 해본 사람만이 알거에요.

미혼 지영: 제가 비혼주의자는 아니거든요. 근데 이런 사실을 보고 듣고 하다보니 결혼은 정말 하는게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기자: 시댁과의 갈등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셨는지요?

미혼 지영: 저는 그 부분이 좀 갑갑하더라고요. 싫다, 힘들다, 안된다 왜 말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자기 자리는 자기가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생각해주겠어요. 싫다고 말하고 힘들다고 표현하고 안된다고 딱 자르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

주부 지영: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저도 결혼 전에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혼하는 순간 그 생각이 저 멀리 도망가는 걸 느꼈어요. 현실적으로 ‘시댁’은 그렇게 편한 곳, 편한 상대가 아님을 결혼후에 깨닫게 된거죠. 저는 시댁과 같은 동네에 거주중인데, ‘와서 밥먹어라’, ‘반찬 가져가라’ 하는 것도 굉장히 부담스럽고 싫더라고요. 그런데 거절의 말을 하긴 힘들어요. 괜히 가족간의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아서요.

기자: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게 분란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쉬운 일이 아니네요.

주부 지영: 남편과의 사이가 안좋아질 수 있고, 시댁에서는 더욱 안좋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겠죠.

미혼 지영: 제가 결혼해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시댁과의 사이에요. 저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라 시댁에 가고 안가고는 내가 결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주위를 보니 너무 당연하게 명절에 혹은 그렇지 않은 날에도 ‘부르면 달려가는’ 존재가 며느리라는 이름인 것 같아요.

주부 지영: 부르면 가야하는데, 그게 좋은 마음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개인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다만 어느 누구 좋은 마음, 기쁜 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기자: (주부 지영씨는)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주부 지영: 한 회사에 부부가 같이 다니면 더 좋겠지 생각했는데, 결혼을 발표한 이후 즉각 회사의 반응은 퇴사였어요. 그리고 그 퇴사는 남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은 말이었고, 당연히 여자가 퇴사해야지 한다는 분위기였죠. 그래도 그런 시선이나 압박을 견뎌내며 회사 생활을 이어갔는데,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회사의 퇴사 종용이 시작되더라고요.

미혼 지영: 저와 같이 일하는 분들은 다 미혼인데, 이유가 그런 부분에서 온 것 같아요. 결혼하면 모두 회사를 그만두는 분위기. 그래서 저도 너무 당연하게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기자: (미혼 지영씨는)결혼하면 일을 그만두실 계획인가요?

미혼 지영: 사실 언젠가 사회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는 ‘빨리 결혼해서 집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거든요. 근데 주위 친구들을 보니 편한 쉼이 아니더라고요. 외출도 제대로 못하고, 자유로울줄 알았는데 더 구속되는 삶을 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결혼을 해도 계속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제 일을 갖고 있어야 저도 남편한테 당당할 것 같기도 하고요.

주부 지영: 맞아요. 경단녀의 재취업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거에요. 일단은 아이 보육 문제가 가장 커요.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출근하려하면 ‘얼마나 번다고 아이를 내팽개치고 나가냐’는 시선이 가장 크고요, ‘아이는 엄마가 봐야한다’는 의식도 너무 단단하더라고요. 또 일을 쉰만큼 업무 능력은 저하돼 있고, 그만큼 나이는 또 들어 있어요. 상사와 후배들에게 치이는 생활이 이어지다보면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기자: 이 영화로 인해 결혼을 포기하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갖게 되는 사람도 있을까요?

미혼 지영: 그렇기보다 특별한 배려는 아니어도 차별이나 편견이 조금은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에 오는 엄마들을 보며 ‘일 안해서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되게 아이들을 데리고 왜 이런데를 올까’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영화를 보며 그들의 삶이 참 피곤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크게 오더라고요.

그리고 서로가 만족하는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서로 노력해야한다는 아주 원론적이면서 쉽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물론 결혼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할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고요.

주부 지영: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주부 김지영의 마음을, 경단녀 김지영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노는게 아니고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다면 힘든시간을 보내고 있을 많은 김지영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기자: 미혼과 주부,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미혼 지영: 사랑하는 사람끼리 평생을 함께 하고자 약속하고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일로, 각자의 가족에서 완벽하게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가나 처가로 인해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부부사이는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주부 지영: 결혼은 당사자 두 사람의 관계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맺게 되는 가족관계도 상당한 힘을 갖는 것 같아요. 그게 좋을 때도 때론 부담일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가정의 평화로움을 위해서.

기자: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것인가요?

주부 지영: 그럼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여자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죠. 경단녀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야하는지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또 영화와 같은 삶을 현재 현실에서 살고 있는 분들에게는 힘이 될 듯해요.

미혼 지영: 저도 무조건 추천이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 현실적인 문제는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도 알게 돼서 추천하고 싶은 영화예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개인의 잘못으로 ‘경단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비혼이 늘고 출산율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이 영화가 단순히 이슈에 머물지 않고, 이 영화로 인해 사회적인 인식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사진=시사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