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이 최다 형태의 예술과 어우러질 만한 나만의 복합문화공간, '에무ART-SPACE'
(시사캐스트, SISACAST= 양태진 기자)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시간을 몰고다니는 바람과 그 자리에 머문 기억이다. 어느 기간 동안 만큼은 조선 왕조의 궁궐로 '이궁(離宮)*'이라 칭해졌던 '경희궁'.
그 시간의 유려한 흐름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신록의 옛 터와 함께 그 숲 속으로 이어진 길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이름도 영험한 '에무 아트스페이스'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던 기억은 구.사계절 출판사의 사옥으로서, 책 중심의 문화를 더욱 양연(亮然)케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시간은 더욱 빠른 변화를 재촉, 1층 카페를 시작으로 공연장 및 교육장을 비롯한 갤러리, 그리고 2개 관의 섬세한 기획력을 탑재한 영화관까지,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데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술영화관의 형태를 갖추는데 많은 노력을 할애 해 왔습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는 영화관 등록 이전 시점이라 운영에의 어려움이 많았죠. 그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영화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일환으로, 전문 영화 프로그래머의 영입과 함께 초기 기반을 닦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이에 예술영화관으로서는 현재 어느 정도 안정화 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 마련에 힘쓰고 있죠."
현 '에무 아트-스페이스'의 총괄책임과 기획을 맡고 있는 김상민 대표의 말이다.
사단법인 복합문화공간 '에무'는 그 이름에서부터 뭔가 특별한 약칭의 기운이 돋보인다. 에무(EMU)'라는 말 자체에서 풍기는 어감도 상당부분 흥미를 자극하거니와, 그 진짜 의미를 알고 난 이후의 기억은 이 공간 만의 미묘한 감성 체계를 보다 쉽게 따라가 볼 수 있는데에 자그마한 일조를 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 사상가로 지칭되는 에라스뮈스(ERASMUS, 1466-1536).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이자, '우신예찬'의 저자인 그의 이름이 이곳 '에무'라는 타이틀의 원천 소스로 활용(?)되기까지, 유럽 주류 엘리트들의 행태를 비판함과 동시에, 당시의 종교개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신학자로서의 입지는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유효한 것이었다.
"약함은 생명의 은상(恩賞)이요, 상처 속에 우주가 있다."란 말로 '에라스뮈스'만의 철학을 집약해 냄은 물론,
당시 유럽의 정세 만큼이나, 현대의 전통 사상, 예술 등이 처한 문화적 현실이 그 만의 인문학적 소양으로도 일부 치유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이에 더욱 다양하고 상처입은 문화 예술이 대중들과 어울려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데 대한, '에무 아트스페이스' 만의 보이지 않는 사명감이 건물 곳곳에 숨어 있는 듯 했다.
이러한 인문학적 예술이 대중적 선호도와 만나 '영화'가 탄생된 것이라면, '에무시네마'는 그 스스로의 우주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국 전통 풍경과도 어우러진, 보다 더 자기주도적인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상영을 기획하고 알리는데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또한, 2013년 전문예술단체를 거쳐 2015년에 개관된 이후로 줄곧, 개성과 다양성측면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래밍으로도 소수 영화관객들의 잃어버린 니즈까지 충족시키는데 '에무시네마'만의 독자성을 구축해 왔다.
다양한 시사회와 각 종 영화제 순회상영, GV, 개봉작 및 기획상영은 물론이고, 단순히 영화를 보는 행위에서 소위 행위주체자들끼리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들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 온 것이다.
일례로, 지난 16일에 상영된 영화 <페인 앤 글로리> 관객 일부는 '살롱de뷰' 정규 행사의 안내에 따라 1층 카페에 모여 영화와 관련한 '수다'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청은 에무시네마 인스타그램 또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선착순으로 진행됐다고 하니, 다음 기회를 엿보는 독자들은 이 부분 참고하길.
또한, 이달 23일(일)에는 작년 개봉 이후부터 '에무시네마'에서 줄곧 영어 자막으로만 상영되어 온 영화 <기생충>의 '짜파구리(Ramdong)' 파티가 예정돼 있다. 재료가 소진되면 조기 마감될 수도 있다고 하니, 아직 먹어볼 기회가 없었거나, 그 맛을 재음미 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에무시네마의 건물 지하 1층(팡타공연장)으로 향할 필요가 있겠다. 영화 이야기와 함께 실제 '짜파구리'의 맛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하다.
"요즘은 거의 일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예매하다 보니, 영화관 선택시 확인되는 저희 극장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뭔가 있을 법 하지 않은 장소에 극장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면서, 이곳에 위치해 있는 연유를 궁금히 여기시는 어르신 분들이 특히나 많이 계시죠.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계속 구상 중입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존재하면서도 골목 깊숙이 숨어있는 듯한, 비밀공간에의 비유에 따른 김상민 대표의 반응이다.
"호주의 어느 가게는 낙하산에 샌드위치를 매달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더군요. 저희도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또 하나의 강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만한 노력에 경주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길이 유독 힘드셨다면, 요구르트나 그 밖의 음료를 서비스 해 드리는 방안에서, 극장이 이 장소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며 소통의 문을 여는 방식들이 그것이죠. 일반 영화관의 위치와는 사뭇 다른 외진 곳에서 풍겨져 나올 만한 분위기를 통해 보다 정감있고 옛 추억에 젖어 볼 수 도 있을, 그런 인간적인 느낌으로의 차별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계속된 인터뷰 도중, 영화 관람 이후의 시간을 곱씹다보니, 이제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에무'가 궁금해졌다.
먼저, 상영관을 나와 맨 꼭대기층으로 발을 옮기면, 'GARGAN ROOFTOP' 이라 쓰여진 옥상정원과 마주할 수가 있다.
이후, 다시 건물의 지하층까지 내려가면, 지하 1층에 '팡타개라지(PANTA GARAGE)'라는 특이한 이름의 공연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의 이름은 '프랑수와 라블레'의 장편소설 <팡타그뤼엘>에서 따온 '팡타'와 창고 '개라지'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소설 속 '팡타그뤼엘'은 세상이 온통 목말라 있을 때, 물과 술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 거인을 지칭, 이곳 또한 그 이름 그대로 공연을 통한 음악은 물론이요, 술과 음료를 통해 공연 감상에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전문적인 음향 장비와 감각적인 조명 시스템 또한 모두를 갖추고 있는 이곳은 락, 포크, 전통음악 등의 다양한 장르 공연은 물론, 기획 공연, 공동 주최 공연, 초대 공연 등을 위한 공간 대관도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획과 컨셉 공연에 있어선, 타 장르와의 결합 시도나, 특히 영화의 OST와 연계된 공연들이 때마다 준비된다고 하니, 홈페이지와 SNS를 통한 정보 확인의 고삐는 절대로 늦춰선 안될 것.
팡타개라지만의 설레이는 공연에 잠시나마 귀를 호강했다면, 이젠 한 층 더 아래로 시선을 잡아끄는 '갤러리 에무'에 몸을 맡겨 보자.
2010년, 복합문화공간의 형태로 처음 문을 연 갤러리는 '김영철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술관으로서 내보일 수 있는 다양한 회화와 사진 기획전을 비롯하여, 영상, 연극 등 타장르와의 경계를 허물어내는 실험들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 시켜왔다.
이젠 예술로 달궈진 눈과 귀를 자가 음미해 볼 겸, 마지막 1층에 위치한 '카페 에무'로 발을 들이니, 신선한 향기가 묻어나는 판매용 책들이 양 옆으로 나란히 나와 손님을 반긴다.
이곳은 마치 이전 사계절 출판사 사옥의 역사와도 연계되어 있는 듯, '사계절 출판사'의 다양한 그림책을 중심으로 한 현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다양한 책들이 작은 동네 서점을 방불케 했다.
2018년 2월부터 '사계절 책 향기 나는 집, 카페 에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카페는 '이달의 책', '이달의 작가전', '주제관', '기획관', '독자가 독자에게', '시크릿 북', '그림책 상설관', '낭송코너' 등을 두어 방문객들이 날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책을 만날 볼 수 있도록 작지 않은 배려를 해 놓고 있었다.
40년 가까이 '책은 그릇에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라는 일념으로 출판업에 매진해 온 '사계절 출판사'만의 엄선된 책들 또한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형국.
이 카페의 자리는 옛 '회상전' 터로서, 왕의 침전을 '융복전', 왕비의 침전을 '회상전'이라 칭하던 당시, 숙종과 경종이 이 곳, '회상전'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곳을 찾은 이들 중 실제로 애 못 낳던 사람이 아이를 낳는가 하면, 줄곧 아들만 낳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는 풍문 아닌 풍문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카페 에무 뒤편에는 경희궁 숲과 연결된 뒤뜰이 있는데, 이곳은 '은하수'라 불리는 작은 숲 속 공간으로, 이곳을 바라보며 책과 함께, 막 구운 빵과 커피, 와인, 맥주 등의 또 다른 예술적 감상의 기회를 만끽할 수도 있다.
"초기 운영 시절, 마땅한 공식이 없던 당시에는 이곳의 홍보를 위해 모든 걸 다 해 본 것 같습니다. 근처 지하철 출구에서 이곳에 올 수 있는 수많은 동선들을 영상으로 촬영해, 연락오시는 분들께 보내드리거나, 경희궁 길로 오시는 분들에 한해 할인된 음료를 드리는 등, 또는 점시 시간에 직접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 이곳을 알리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을 감행하기도 했죠. 무엇보단 지금의 인지도에 만족하기에 앞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장착하여 대중의 입장에서 보다 더 만족스런 복합문화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 열정을 불사를 생각입니다."
차후에는 '키오스크' 형태의 기술적인 무인 매표 방식을 도입,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더 편리한 입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라는 말로 김상민 대표와의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유럽의 가장 큰 장학재단 중 하나인 '에라스무스 재단'과도 협력, 교류의 일로를 개척해 가는 등, 그 이름 만큼이나 세계와 어우러진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해 가고 있는 '에무ART-SPACE'.
관객들과의 편안한 소통은 물론,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입체적인 콜라보로 재탄생 될 수 있기까지 수많은 시도에 시도를 거듭하며 절대 꺼트려선 안될 스스로의 등불을 밝혀 가고 있는 지금,
더 생소한 곳이 더 큰 의미로 환원될 그 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바람이 타고 전할 미래의 기억을 위해, 옆 동네, 역사 속 작은 시네마 하나 가까이 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뿌듯함의 계절이 되돌아온 듯 하다.